쿠네다 울레딕

쿠네다 울레딕 맙 에데른(웨일스어: Cunedda Wledig mab Edern: 386년경-460년경)은 귀네드 왕국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쿠네다 막 에데른
Cunedda mab Edern
귀네드 국왕
재위 5세기
전임 (왕조 창업)
후임 에이니온 어르스
이름
에데른의 아들 쿠네다(웨일스어: Cunedda mab Edern)
신상정보
출생일 ??
사망일 609년 4월 17일
부친 파다른의 아들 에데어른 (웨일스어: Edeyrn, 라틴어: Æturnus)
배우자 코엘 헨의 딸 그와울(Gwawl)
자녀 오스마일(Osmail), 루마누스(Rumanus), 두나우투스(Dunautus), 에테르누스(Eternus), 케레틱(Ceretic), 아블로익(Abloyc), 엔니아운(Enniaun), 독마일(Docmail), 터피아운(Typiaun), 구론(Gwron)

"쿠네다"라는 이름(828년 저술된 유사역사서 『브리튼인의 역사』에는 "쿠네닥[Cunedag]"이라고 표기)은 브리튼어로 "훌륭한 사냥개/전사" 또는 "훌륭한 사냥개/전사를 가지다"라는 뜻의 *Cuno-dagos에서 비롯되었다.[1] 쿠네다의 족보에 따르면 그의 조부는 파다른 베이스루드였다. 야사에서는 파다른이 로마군에 복무하여 어느 정도 출세한 인물로, 380년대 또는 그 전에 마그누스 막시무스가 오늘날의 스코틀랜드 클라크매넌셔에 배치한 보타디니 부대를 이끌었다고 전한다. 또는 당시 로마가 국경지대의 이민족들을 교린하던 방식으로 로마 벼슬을 받은 독립 군장이었을 수도 있다.[2] 어쨌든 파다른은 스코틀랜드에 세력을 가지고 있었고, 파다른이 죽은 뒤 그 세력이 아들 에데어른(웨일스어: Edeyrn, 라틴어: Æturnus 아이투르누스[*])에게 계승되었고, 그것이 다시 에데어른의 아들 쿠네다에게 계승되었다고 한다.[3]

『브리튼인의 역사』에 제62절에 기록된 야사를 보면, 쿠네다는 마나우 고도딘 출신이었다.

위대한 왕 마엘군은 귀네드 일대의 브리튼인들을 다스렸으며, 그의 조상 쿠네다는 여덟 명의 아들과 함께 북에서 내려왔다. 그들이 온 지방은 이름이 마나우 고도딘이라고 한다. 그들이 내려온 것은 마엘군의 치세로부터 일백 하고 마흔여섯 해 전이었다. 그들은 그 일대에서 스코트인을 엄청나게 죽여 쫓아냈고 스코트인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4]

이로 보아 쿠네다와 그 조상들은 보타디니를 지휘하여 하드리아누스 방벽 남부에 대한 픽트인게일인의 도발에 맞섰다고 볼 수 있다. 그 뒤 쿠네다가 지휘하는 보타디니 부대는 게일인, 특히 오늘날의 먼스터 지방의 이 리어한의 침공으로부터 웨일스를 방어하기 위해 북웨일스 지역으로 재배치되었다. 쿠네다는 웨일스의 베네도티 땅에 자기 세력을 일으켰고 그것이 이후 귀네드 왕국의 중심지가 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쿠네다가 로마 황제 참칭자인 마그누스 막시무스 및 후계자들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면 쿠네다의 활동 시기는 370년대가 될 것이고, 서로마가 브리타니아를 포기한 직후 브리튼인의 왕이었던 보르티게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 것이라면 쿠네다의 활동 시기는 440년대가 된다.

쿠네다의 증손자라고 하는 마엘군 귀네드는 길다스 사피엔스와 동시대인이었으며,[5][6]캄브리아 편년사』에서 547년에 죽었다고 한다.[7] 그러나 이런 중세 초기 족보서의 신뢰성은 높지 않고, 자신을 쿠네다의 후손이라는 주장들은 10세기나 되어야 표면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보가 옳다고 가정하고 547년부터 역산을 한다면 마엘군의 증조부 쿠네다의 활동시기는 5세기 중엽으로 계산할 수 있다.

쿠네다 본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오늘날의 요크 지역인 에보라쿰을 다스리던 코엘 헨의 딸 그와울과 결혼해 정치적 입지를 다졌고, 슬하에 아홉 아들을 두었다고 한다. 웨일스 소왕국들 중 케레디기온과 메이리온너드는 그의 아들들 중 케레딕과 메이리온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측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