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미국 대사

주한 미국 대사(駐韓美國大使, 영어: Chief of Mission Ambassador in Korea)는 1883년 5월 20일 취임한 루시어스 푸트 특명전권공사를 전신으로 하는 미국 국무부의 주한 대사관의 수장이다.

대한민국의 주한 미국 대사
Chief of Mission Ambassador in Korea
주한 미국 대사 상징
현직:
필립 골드버그

 2022년 5월 5일 취임
관저주한 미국 대사관
임명자미국 대통령
임기2~4년
초대존 무초
설치일1949년 4월 20일

역대 대사

조선 및 대한제국

미국 정부는 1882년조선조미 수호 통상 조약을 맺은 뒤로 한성부외교 사절을 파견했다. 미국 공사관은 한성부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 공사관 건물이었다.[1] 1905년 11월 17일일본 제국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에드윈 모건 공사는 공사관을 폐쇄하고 대한제국에서 철수했다.

대수대사임명취임퇴임임명자비고기타
- 루시어스 푸트1883년 2월 27일1883년 5월 20일1885년 2월 19일 체스터 A. 아서특명전권공사[참고 1]공사대리 조지 클레이턴 포크(1885년 1월~1886년)
- 윌리엄 파커1886년 2월 19일1886년 6월 12일1886년 9월 3일 그로버 클리블랜드변리공사/총영사공사대리 조지 클레이턴 포크(1886년~1887년)
- 휴 딘스모어1887년 1월 12일1887년 4월 13일1890년 5월 26일공사
- 어거스틴 허드 2세1890년 1월 30일1890년 5월 26일1893년 6월 27일 벤저민 해리슨공사
- 존 M. B. 실1894년 1월 12일1894년 4월 30일1897년 9월 13일 그로버 클리블랜드공사
- 호러스 뉴턴 알렌1897년 7월 17일1897년 9월 13일1901년 10월 1일 윌리엄 매킨리공사
- 호러스 뉴턴 알렌1901년 6월 17일1901년 10월 1일1905년 6월 9일특명전권공사
- 에드윈 모건1905년 3월 18일1905년 6월 26일1905년 11월 17일시어도어 루스벨트특명전권공사

대한민국

존 무초 대사로부터 트루먼의 사진을 증정받는 이승만(1949년 4월 20일)
1,500만 달러 규모의 한미원조 조인식에 참석한 유완창 부흥부 장관과 엘리스 O. 브릭스 대사(1955년)
강경화 외교부 장관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과 만난 해리 해리스 대사(2019년 8월 9일)

미국 국무부에서 공식적으로 대한민국에 파견한 역대 대사는 다음과 같다. 순서는 공식적으로 대사(Ambassador)라는 직함을 가지면서, 대한민국에 주한 미국 대사를 파견한 1949년을 1대로 계산한다.[2]

1949년 미국 정부는 이미 대한민국에 파견되어 있던 존 무초 특사를 초대 주한 미국 대사로 임명했다.[3] 무초 특사는 대사 임명을 받고 4월 20일 이승만에게 신임장과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전달했다. 영국프랑스 등 우방의 강대국 대사들로부터도 약식으로 신임장을 받아온 이승만은 미국 대사의 봉정식은 장엄하게 집행하도록 국무회의에서 당부하였다. 이에 따라 국무회의는 이날 무초가 쓰고 있던 반도호텔을 미국 대사관 사무실로 쓸 수 있도록 반도호텔 사무실 증정식도 갖기로 했다. 4월 20일 오전 10시 50분 외무부 의전관의 안내로 나온 무초 대사 및 직원 17명이 분승한 6대의 승용차는 반도호텔 정문 앞에서부터 식장인 중앙청 앞까지 도열한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또 경찰 및 군악대의 장엄한 연주로 시작된 이날 신임장 제정식장은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및 전 각료들이 참석하여 대대적인 행사로 진행, 다른 외교 사절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날 신임장과 트루먼 대통령의 사진을 무초 대사로부터 전달받은 이승만은 '우리 정부의 수립과 육성에 힘써온 무초 특사가 대사로 승격된 것은 한국이 미국의 명실상부한 맹방으로 진일보한 것'이라고 치하하기도 했다.[3]

대수대사임명취임퇴임임명자비고기타
1 존 무초1949년 4월 7일1949년 4월 20일1952년 9월 8일 해리 S. 트루먼총영사 윌리엄 R. 랭던(1945년 9월 12일~1945년 12월 24일)
총영사 머렐 H. 베닝호프(1945년 12월 24일~1946년 3월 15일)
총영사 윌리엄 R. 랭던(1946년 3월 15일~1948년 9월)
총영사 조지프 제이콥스(1947년 5월~1948년 10월)
총영사 존 무초(1947년 5월~1948년 3월 19일)
대사대리 프란츠 H. 라이트너(1952년 9월 9일~1952년 11월)
2 엘리스 O. 브릭스1952년 8월 25일1952년 11월 25일1955년 4월 12일1953년 7월 28일 미국 상원 인준
3 윌리엄 레이시1955년 3월 24일1955년 5월 12일1955년 10월 20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1955년 10월 15일 건강 문제로 사임[4]
4 월터 다울링1956년 5월 29일1956년 7월 14일1959년 10월 2일
5 월터 P. 매카너기1959년 10월 5일1959년 12월 17일1961년 4월 12일1960년 1월 21일 미국 상원 인준
6 마셜 그린1961년 4월1964년 7월 존 F. 케네디임시 임기
7 새뮤얼 버거1961년 6월 12일1961년 6월 27일1964년 7월 10일
8 윈스럽 브라운1964년 7월 31일1964년 8월 14일1967년 6월 10일린든 B. 존슨
9 윌리엄 J. 포터1967년 6월 9일1967년 8월 23일1971년 8월 18일
10 필립 하비브1971년 9월 30일1971년 10월 10일1974년 8월 19일 리처드 닉슨대사대리 리처드 에릭슨(1974년 1월, 1974년 8월~1974년 9월)
11 리처드 스나이더1974년 8월 23일1974년 9월 18일1978년 6월 21일제럴드 포드
12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1978년 6월 27일1978년 7월 24일1981년 6월 10일 지미 카터
13 리처드 워커1981년 7월 18일1981년 8월 12일1986년 10월 25일 로널드 레이건한국 전쟁 참전
14 제임스 릴리1986년 10월 16일1986년 11월 26일1989년 1월 3일한국 전쟁 참전
15 도널드 그레그1989년 9월 14일1989년 9월 27일1993년 2월 27일조지 H. W. 부시대사대리 레이먼드 버그하트(1993년 3월~1993년 9월)
16 제임스 레이니1993년 10월 15일1993년 11월 2일1997년 2월 5일 빌 클린턴한국 전쟁 참전대사대리 리처드 크리스텐슨(1997년 2월~1997년 11월)
17 스티븐 보즈워스1997년 10월 24일1997년 12월 15일2001년 2월 10일대사대리 에번스 리비어(2001년 2월~2001년 9월)
18 토마스 허버드2001년 8월 3일2001년 9월 12일2004년 4월 17일 조지 W. 부시
19 크리스토퍼 힐2004년 5월 12일2004년 9월 1일2005년 4월 12일대사대리 마크 민튼 (2005년 4월~2005년 6월)
20 알렉산더 버시바우2005년 10월 12일2005년 10월 17일2008년 9월 18일
21 캐슬린 스티븐스2008년 8월 4일2008년 10월 6일2011년 10월 23일한국 이름 심은경
22 성 김2011년 10월 13일2011년 11월 25일2014년 10월 24일 버락 오바마한국 이름 김성용
23 마크 리퍼트2014년 5월 1일2014년 11월 21일2017년 1월 20일대사대리 마크 내퍼(2017년 1월 20일~2018년 6월 30일)
24 해리 해리스2018년 5월 23일2018년 7월 7일2021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주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대사 지명자에서 전환 지명[5]대사대리 로버트 랩슨(2021년 1월 20일~2021년 7월 15일)
대사대리 크리스토퍼 델 코소(2021년 7월 15일~2022년 7월 10일)
25 필립 골드버그2022년 5월 25일2022년 7월 12일 조 바이든

일화

33년 전 원어민 영어 교사로 있었던 예산중학교를 다시 찾은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2008년 10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균형을 맞추기 위해 미국이 파견한 주한미군의 수장으로서, 주한 미국 대사는 한국 현대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다. 제8대 대사인 윈스럽 브라운브라운 각서의 장본인이고, 제6대 대사인 마셜 그린 대사는 박정희5·16 군사 정변을 경험했으며,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니어1979년 10월 26일 박정희의 저격 사건인 10.26 사건전두환1980년 12·12 군사 반란을 제1선에서 목격한 장본인이었다.

1973년 이후락의 주도로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당시 제10대 필립 하비브 대사 등이 개입을 하여 암살을 막았던 적이 있다.[6] 2011년 부임한 제22대 대사인 성 김의 부친은 김대중 납치 사건의 일본 내 총책임자로 알려진 전 주일본 대한민국 공사 김재권이다. 이에 관해 이희호는 성 김의 부임을 앞두고 "(성 김 내정자가 납치 사건) 당시 열세 살 정도였는데 뭘 알았겠나. 연좌제 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라고 밝혔고,[7]한국계 미국인 대사가 되는 만큼 한미 관계남북 관계가 더 좋아지는 데에 많은 일들을 해주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8]

2008년 부임한 제21대 대사인 캐슬린 스티븐스는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으며, 미국 평화 봉사단원으로 대한민국을 방문해 1975년부터 2년간 예산중학교에서 원어민 영어 교사로 일을 한 경험이 있다.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피습사건

2015년 3월 5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혐의회의 조찬에 참석한 마크 리퍼트 대사가 우리마당의 대표인 김기종 씨에 의해 피습당하였다. 이로 인해 오른쪽 얼굴에 80여 바늘을 꿰매는 등 큰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곧바로 치료를 받아 생명에 지장은 없었다.

같이 보기

각주

내용주
참조주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