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8년 11월 24일(순조 18년 음력 10월 26일)[1] 조선의 제23대 왕 순조와 순원왕후의 차녀로 태어났다. 성은 이, 본관은 전주이다[2]. 문조(효명세자)와 명온공주의 친동생이며, 덕온공주의 친언니이다.
덕온공주의 모후 순원왕후는 안동 김씨 가문 출신으로, 김조순의 딸이다. 순원왕후는 자신의 집안이 풍양 조씨 가문과 함께 조선 말기 세도 정치의 절정기를 이끌어 나가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왕비이기도 하다[3].
공주 시절
7살 때인 1824년 11월 10일(순조 24년 음력 9월 20일) 정식으로 공주에 책봉되어 복온공주(福溫公主)라고 하였다[4]. 이후 13살 때인 1830년 4월 20일(순조 30년 음력 3월 28일) 삼간택을 거쳐 부사과를 지낸 안동 김씨 김연근의 아들 김병주와의 혼인이 결정되었으며, 김병주는 창녕위에 봉해졌다[5]. 그리고 이 해 5월 20일(음력 4월 28일) 정식으로 혼인하였다[6].
그러나 공주는 혼인 2년만인 1832년 6월 10일(순조 32년 음력 5월 12일) 15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말았다. 이때 순조는 현종의 딸 명안공주의 예에 맞춰 장례를 거행하게 하였으며, 조정의 관원들에게 장례에 미진한 부분이 없도록 할 것을 명하였다. 또 성복을 하는 날에는 순조가 직접 공주의 집에 행차하였다[7]. 일찍 사망하여 소생은 없었다[8].
복온공주의 묘는 현재의 서울특별시강북구번동에 마련되었으며, 훗날 남편 김병주와 합장되었다. 한편 당시 이 인근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이 지역의 이름을 공주의 무덤에서 유래하여 "공주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9]. 현재 번동에는 복온공주와 김병주의 재사인 서울 번동 창녕위궁재사가 있으며, 이 재사는 2002년 9월 13일 서울특별시의 등록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되었다[10].
이후 복온공주가 사망하고 불과 한달 후인 1832년 7월 10일(순조 32년 음력 6월 13일), 공주의 친언니인 명온공주마저 사망하고 말았다[11]. 이에 따라 순조의 자녀는 셋째 딸인 덕온공주를 제외하고 모두 부왕보다 일찍 사망한 것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순조보다 오래 산 덕온공주도 1844년(헌종 10년) 23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12][13].
한편 복온공주의 남편 김병주는 1853년 3월 28일(철종 4년 음력 2월 19일) 사망하였다[14].
기타
복온공주가 안동 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갈 때 고려 시대부터 내려오던 궁중술의 한 종류인 삼해주의 제조법을 가지고 간 후, 대대로 안동 김씨 집안에서 삼해주의 제조법을 계승하게 되었다. 삼해주는 1993년 2월 13일 서울특별시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