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란트 진주

1936년 나치 독일이 비무장지대인 라인란트를 군대로 점거한 사건

라인란트 진주(독일어: Rheinlandbesetzung 라인란트베제충[*]) 또는 라인란트 재무장(독일어: Remilitarisierung des Rheinlandes)은 1936년 3월 7일 나치 독일의 군대가 베르사유 조약로카르노 조약을 정면으로 위배하여 라인란트 안으로 진입한 사건이다. 프랑스영국 모두 군사적 대응이 준비되지 않아 독일의 라인란트 진주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1939년 이후 호사가들은 1936년 당시 강력한 군사적 움직임을 보였다면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의 팽창주의적 계획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 역사학에서는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대중과 엘리트 양쪽 모두 군사 개입에 강력히 반대하는 여론이었으며 두 국가 모두 군대를 투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별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평한다.[1]

베르사유 조약에서 규정한 라인란트 지역을 그린 지도. 라인강 서쪽 독일 영토가 해당된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가는 길
베르사유 조약1919년
생제르맹 조약1919년
소련-폴란드 전쟁1919-1920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전쟁1919-1920년
트리아농 조약1920년
라팔로 조약1920년
프랑스-폴란드 동맹1921년
로마 진군1922년
코르푸섬 사건1923년
루르 점령1923-1925년
나의 투쟁1925년
제2차 이탈리아-사누시 전쟁1923-1932년
도스 플랜1924년
로카르노 조약1925년
영 플랜1929년
대공황1929년
만주 사변1931년
만주국 대분란전1931-1942년
제1차 상하이 사변1932년
제네바 회담1932-1934년
제1차 허베이성 전쟁1933년
러허 사변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권력 장악1933년
탕구 협정1933년
이탈리아-소련 협정1933년
내몽골 작전1933-1936년
독일-폴란드 불가침 조약1934년
프랑스-소련 상호원조조약1935년
소련-체코슬로바키아 상호원조조약1935년
허메이 협정1935년
영독 해군협정1935년
12월 9일 운동1935년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1935-1936년
라인란트 진주1936년
팔레스타인 아랍 봉기1936-1939년
스페인 내전1936-1939년
독이 협정1936년
방공 협정1936년
쑤이위안 작전1936년
시안 사건1936년
루거우차오 사건1937년
중일 전쟁1937-1945년
USS 파나이 사건1937년
안슐루스1938년 3월
1938년 폴란드의 리투아니아 최후통첩1938년 3월
5월 위기1938년 5월
하산호 전투1938년 7-8월
블레트 협정1938년 8월
비선전포고 독일-체코슬로바키아 전쟁1938년 9월
뮌헨 협정1938년 9월
제1차 빈 중재1938년 11월
독일의 체코슬로바키아 점령1939년 3월
헝가리의 카르파티아 우크라이나 침공1939년 3월
1939년 독일의 리투아니아 최후통첩1939년 3월
슬로바키아-헝가리 전쟁1939년 3월
스페인 내전의 최후 공세1939년 3-4월
단치히 위기1939년 3-8월
영국-폴란드 군사 동맹1939년 3월
이탈리아의 알바니아 침공1939년 4월
소련-프랑스-영국 협상1939년 4-8월
강철 조약1939년 5월
할힌골 전투1939년 5월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1939년 8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소련의 폴란드 침공1939년 9월

제1차 세계 대전 전후 라인란트는 연합국이 점령했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은 라인강 서쪽 혹은 동쪽 50 km 이내 모든 영토에 병력 진출이 금지되었다. 1925년 로카르노 조약에서는 라인란트가 영구적인 비무장 지대임을 재확인했다. 1929년 독일의 외무장관 구스타프 슈트레제만은 라인란트에서 연합국의 철수를 협상했다. 결국 1930년 6월 마지막 연합국 병력이 라인란트에서 철수했다.

1933년 1월 나치당의 독일 권력 장악 후 독일은 재무장과 라인란트의 무장화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1936년 3월 7일 히틀러는 프랑스-소련 상호원조조약을 구실로 독일 국방군 2만명을 라인란트로 진격하라고 명령했고 독일 전역에서 축제가 열렸다. 전쟁 위험을 원치 않았던 영국과 프랑스 정부는 조약 시행을 반대하기로 결정했다.

라인란트 재무장과 독일 재군비 선언은 라인란트의 비무장 상태로 막혀 있던 서유럽 침략 정책을 독일이 다시 시행할 수 있게 도와주워 유럽에서 힘의 균형을 영국과 프랑스에서 독일로 바꿔놓았다.

영국과 프랑스가 개입하지 않아 히틀러는 두 국가가 나치의 외교정책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독일은 전쟁 준비와 유럽 지배 정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2] 1936년 3월 14일 뮌헨에서 히틀러는 "위협도 경고도 내 길을 막지 못한다. 나는 몽유병자읩 본능적인 확신처럼 순리가 내게 부여한 길을 따를 것이다"고 말했다.[2]

배경

같이 보기

각주

참고 문헌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