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계원

대한민국의 군인 (1923–2016)

김계원(金桂元, 1923년 6월 28일 ~ 2016년 12월 3일)은 지난날 중앙정보부 부장, 타이완 주재 대사, 대통령 비서실 실장 등을 지낸 대한민국의 군인, 정치인, 외교관, 기업인이다. 경상북도 영주 출생이며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김계원
대한민국의 제5대 중앙정보부장
임기 1969년 10월 21일 ~ 1970년 12월 20일
전임 김형욱
후임 이후락
대통령 박정희
총리
역대 국무총리

신상정보
출생일 1923년 6월 28일
출생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주
사망일 2016년 12월 3일(2016-12-03)(93세)
사망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경력 자유중화민국 타이완 주재 대한민국 대사
대통령 비서실 실장
원효실업 회장
원효실업 명예회장
민주공화당 당무위원(1969년 9월 5일 ~ 1969년 10월 2일)
정당 무소속
본관 나주(羅州)
형제자매 김계일(첫째 아우)
김계삼(둘째 아우)
김계정(셋째 아우)
배우자 서봉선
자녀 3남 1녀
친인척 이은숙(첫째 제수)
종교 개신교
군사 경력
복무 일본 제국 육군
대한민국 육군
복무기간 1945년 ~ 1945년
일본 제국 육군(1945년)
대한민국 육군(1946년 ~ 1969년)
근무 육군본부
최종계급 일본 제국 육군: 소위
대한민국 육군: 대장
지휘 육군참모총장
주요 참전 한국 전쟁

생애

1923년 6월 28일 경상북도 영주에서 출생하였고 경성부연희전문학교 2년을 수료한 후 일본군 학도병으로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육군 소위로 복무하던 중 해방을 맞이하고 귀국하였다.[1]1946년 군사영어학교 1기로 육군 소위 임관 하였으며, 같은 해 1946년 대한민국 육군 중위 진급하였고 그 후 1969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육군참모총장중앙정보부장을 맡았다. 그 후 국회의원 출마를 거부하고 자유중화민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를 지냈고(1971년 1월~ 1978년 12월)[2][3] 1978년 12월에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되었는데 그 직위에서 재직하던 중 1979년 10.26 사건에 관련되어 육군 보안사령부로 끌려가서 심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군법회의재판에 회부되어 내란목적살인 및 내란중요임무종사미수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그는 예비역 육군대장으로 이미 예편한 상태였지만 신군부 세력에 의해 보충역 이등병으로 정정되었다.[4][5] 이후 무기징역형으로 형량이 감형되었고, 1982년 5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후 1988년 특별사면 복권되었다. 그해 12월 18일 예비역 장군 자격을 회복하였다.[4] 이후 정치에서 손을 뗐다. 그 후 원효실업 회장을 지냈다가 물러났다. 2016년 12월 3일 오후 11시에 숙환으로 타계했다.

가족 관계

학력

기타

  • 민간인 신분인 암살범 김재규 정보부장을 계엄령 선포 전임에도 김계원 비서실장은 대통령 경호실이나 검찰, 경찰이 아닌 군에서 체포하도록 요청하였다.[6] 언론에서는 이것을 물리적 힘이 법치 질서를 깨며 통치 수단으로 등장하였다고 지적한다.[6]
  • 12.12 이후 김계원은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의 죄 대신 단순살인죄가 적용되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그는 88년 말 예비역 대장 계급이 복권되는 등 완전한 복권이 이뤄졌으나 군인연금지급신청서류 제출을 '국가에 대한 재산권 행사기간(5년)'의 시효를 넘긴 1988년 7월 14일에 하게 된 까닭으로 이후 연금을 한푼도 지급받지 못했다.[7]

김계원을 연기한 배우들

각주

전임
김용배
제18대 육군참모총장
1966년 9월 2일 ~ 1969년 8월 31일
후임
서종철
전임
김형욱
제5대 중앙정보부장
1969년 10월 21일 ~ 1970년 12월 20일
후임
이후락
전임
김신
제7대 주 중화민국 대사
1971년 1월 ~ 1978년 12월
후임
옥만호
전임
김정렴
제5대 대통령비서실장
1978년 12월 23일 ~ 1979년 10월 30일
후임
최광수
(5대 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