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 1855년 12월 3일(1855-12-03 ) 사망 1934년 2월 16일(1934-02-16 ) (78세) 국적 조선 →대한제국 관련 활동 독립운동
이석영 (李石榮, 1855년 12월 3일 ~1934년 2월 16일 )은 한국 의 독립운동가 이다.
생애 1855년 에 이조판서 를 지낸 이유승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본이 나라를 빼앗자 이석영은 자신의 농토를 팔아 망명 생활비를 마련하여 형제들하고 같이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경학사 ·신흥무관학교 의 창설 운영자금으로 헌신하였다. 독립운동 자금 등으로 재산을 다 쓴 이후 이석영은 중국 각지를 홀로 떠돌아다녔다. 1934년 중국 상하이 에서 80세를 일기로 사망했다.[1] 동아일보 1934년 2월 28일자 기사. 이석영의 장남인 이규준 (1899 ~ 1927)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으며, 일제의 밀정인 김달하 등을 암살하고 한커우(漢口)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29세의 나이로 암살당해 사망하였다.
가족 관계 증조 할아버지: 이정규(李廷奎) 할아버지: 이계선(李啓善) 13촌 백부, 양아버지: 이유원 (李裕元, 1814년 ~ 1888년 ) 아버지: 이유승(李裕承, 1835년 ~ 1907년 ) 어머니: 동래정씨맏형: 이건영 (李健榮, 1853년 ~ 1940년 ) 동생: 이철영 (李哲榮, 1863년 ~ 1925년 ) 동생: 이회영 (李會榮, 1867년 ~ 1932년 ) 동생: 이시영 (李始榮, 1868년 12월 3일 한성부 ~ 1953년 4월 19일 ) 제수: 경주김씨(慶州金氏, 1867년 ~ ?, 대한제국 의 총리대신 김홍집 의 딸)조카: 이규열(? - 1953년 ) 조카며느리: 서차희 제수: 반남박씨(潘南朴氏, 1883년 ~ ?) 여동생: 이씨 여동생: 이씨 매제: 신재희(申宰熙, 1891년 - 1943년 , 언론인 겸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 신익희 의 친형) 서모: 이름 미상 처:아들: 이규준 (1899 ~ 1927, 독립운동가[2] 일제 의 밀정인 김달하 를 암살했으나, 후에 독립운동 가인 박용만을 암살했다고 해서 논란이 됐으나 박용만은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분으로 암살당했다는 전 해에 이미 병사했다고 밝혀짐 .) 아들: 이규서(1912 ~ 1933), 숙부인 이회영 을 일본 경찰 에 밀고하여 체포당하게 했다. 손녀 이온숙, 이숙온, 이우숙 기타 아들 이규준(1899 ~ 1927[3] )역시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일제 의 밀정인 김달하 를 암살하기도 했다.[3] 다른 아들인 이규서는 숙부인 이회영을 일본 경찰 에 밀고하여 체포당하게 했다.[3] 이규서는 1932년 10월 이달(李達) 등과 함께 밀고자로 지목되어 오던 연충열(延忠烈) 등 2명과 함께 백정기 에게 암살당한다.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해공 신익희 의 여섯째 형 신재희의 부인 경주이씨는 이석영, 이회영 , 이시영 7형제의 친 여동생이기도 했다. 김홍집 가문 역시 그의 인척으로 동생 이시영 의 첫 부인의 친정아버지였다.각주 외부 링크 위키미디어 공용에 이석영 관련 미디어 분류가 있습니다.